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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돌아보기: 볼튼 원더러스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볼튼 원더러스 2-2 아스널

이 경기는 예전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들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경기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정말 멋진 순간들을 즐겼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 4월 26일 토요일에 열린 이 경기만큼 큰 즐거움과 감동을 준 것은 거의 없었다.

참고로 이 시합은 가장 좋아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신 두 번째로 좋아하는 팀인 볼튼 원더러스가 출전한 경기였다.

성장하면서 어머니와 나는 그녀의 아버지(나의 할아버지)가 평소 일반적인 잠자리 이야기나 동화로 재워준 적이 없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대신 우리는 1923년의 볼튼 원더러스를 계속 회상했고 오늘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는 웸블리에서 열린 역대 첫 FA컵 결승전으로 ‘백마’ 결승전이었다. 볼튼은 웨스트햄을 이겼고, 대부분의 내 가족들처럼 나는 이 역사를 만든 선발진을 바로 기억해낼 수 있다. (그리고 볼튼의 2-0 승리를 거둔 득점원)

돌이켜 보면 그 승리는 원더러스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정을 확실히 굳혔을 것이다. 그 당시 그의 기억은 나의 기억도 확실히 되살려 놓았다.

80년을 빠르게 지나 리복 스타디움에서 열린 볼튼 vs 아스널 전은 두 가지 이유로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첫째, 나는 볼튼이 살아남기를 열망했다. 그리고 둘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승을 하는 것이 더욱 절실했다.

이 경기는 토요일 점심시간에 진행되었으며, 아스널은 티에리 앙리, 로베르 피레, 프레디 융베리, 솔 캠벨, 애슐리 콜과 같은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고 이들은 아스널이 우승을 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로 만들었다.

볼튼은 약 6년 전에 유명한 버든 파크를 떠났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 맞대결이 있기 2년 전에 타계하셨지만 그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부심을 갖고 내려다봤을 것이라 확신한다.

 

경기 하이라이트

팽팽한 전반전 이후 후반전 초에 실베인 윌토드와 피레스가 득점하며 아스널은 확실하게 앞서 나가기 시작했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세 번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다시 정상으로 복귀하는 듯했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사실상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볼튼은 최선을 다했고 전 우승팀을 상대로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들의 결심은 또한 이들이 이전에 인정받은 것 이상의 활약을 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볼튼은 프리미어리그 배당에 맞서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이들이 훨씬 부유하고 큰 팀들을 상대로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샘 앨러다이스가 성취한 것을 치하하는 대신 대부분의 스포츠 매체는 볼튼을 롱 패스를 하는 팀으로 오랫동안 여겨왔으며, 볼튼이 살아남기 위해 젊은 잉글랜드 유망주인 조 콜, 마이클 캐릭, 저메인 데포에 더해 파올로 디 카니오와 같은 선수들이 포진한 웨스트햄을 원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볼튼을 롱 패스 팀으로 명명한 것은 제이 제이 오코차, 유리 조르카예프, 이반 캄포와 같은 선수들로 구성된 이 팀에게 확실히 모욕적이었으며, 완전히 틀린 것으로 증명되었다.

이 세 선수는 볼튼에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프랑스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데이비드 시먼이 페르 프란드센이 날린 20야드 거리의 슛을 막아냈을 때 한 골을 만회했는데 조르카예프가 침착하게 헤딩슛을 성공시켰다.

나는 이 프리미어리그 하이라이트를 보고 안심하며 기쁘게 축하했다. 왜였을까? 어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들이 반격할 것임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나의 아버지도 이 골에 대한 내 반응에 놀랐다. 아스널은 여전히 스스로의 운명을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볼튼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믿고 있었다. 불과 10여 분 뒤에 나온 결과에 대한 내 반응은 완전히 다른 수준에 있었다.

홈 팀의 선수가 왼쪽에서 반칙을 당했다. 그 뒤 조르카예프가 왼쪽에서 휘어지는 프리킥을 날렸고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아스널의 교체 선수인 마틴 키언이 자기 팀의 골키퍼를 지나치게 공을 띄울 수밖에 없었고 시먼은 얼어붙었다.

나의 기쁨, 감독, 안심은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많은 것을 의미했다.

나를 두근거리게 하며 볼튼은 버텨냈다. 남자에게 이들은 확실히 엄청났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나는 여전히 그가 마당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좌절한 아스널에게 파울을 하게 만들며 두 번 저글링을 하는 선수로 이름붙인 오코차의 마법 같은 좋은 활약을 떠올린다.

마치 이들의 목숨이 걸린 것처럼 공을 차지하기 위해 경합한 프란드센과 조르카예프를 비롯해 비록 추가 시간에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기는 했지만 임대 선수로 후방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플로렌트 라빌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 프랑스 선수는 1월 말에 팀에 합류했고, 이 팀이 살아남게 하는 데에 다른 선수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좋았을 뿐만 아니라 영리했다. 라빌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본다면 그가 볼튼에서 단 15경기만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에 팀의 역대 최고의 선수 50인에 뽑혔다.

그는 다음 시즌에 영구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단 5경기만에 그의 십자인대가 파열되어 다시는 원더러스에서 뛰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나의 가슴 속에 자리할 것이다.

그리고 샘 앨러다이스는 풀타임 출전하며 그의 즐거움을 보여주며 감독으로서 경이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 승점은 볼튼과 맨유 모두에게 결정적이었다.

이들은 다음날 토트넘을 상대로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했고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이 경기가 양 팀이 달성해야 하는 바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는 느낌은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맨유를 응원하고 볼튼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지 여러 해가 지나서 두 팀의 팬들이 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고 항상 그럴 것인데, 이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이 날은 내 꿈들 중 하나가 아닌 둘을 실현시킨 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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